살아가는 이야기

가문을 이루어 간다는 것.

이퀄라이져 2020. 8. 1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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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증조부님은 독립운동을 하셨고,
몇년 전 소천하신 외조부님은 6.25 참전용사셨다.


모친은 오남매의 장녀로 동생들 뒷바라지하려 좋아하던 노래와 학업을 일찌감치 접고 직장을 다녔고 평생을 대쪽같은 가난한 목회자의 사모로(외가는 과거 서초동 2층집에 살 정도로 부유했다) 헌신하며 사셨고 은퇴 직후 루게릭 병을 얻어 투병중이다.


일찍 돌아가신 조부님은 가문을 세우기 위해 당신의 아들보다 항렬상 윗대인, 아들의 사촌형에게 논밭을 물려준다.
덕분에 위에서 언급한 아들, 내 부친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신 채 고학생이 되어 주경야독으로 직장생활 후 신학교를 갔다.
그리고 난 가난이라는 걸 어려서부터 맛보아야 했다.


사람이 가족에 속한다는 것,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문을 이룬다는 것에 크게 괘념치 않으며 살아왔다.
두 집안 다 뭘 드러내며 으시대는 스타일도 아니다보니 외가가 독립운동가 집안인 것도, 친가의 내력을 안 지도 몇 년이 채 안 되었다.


내게 성향을 묻는다면, 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일본의 망언과 거짓된 행동을 싫어하는 애국자적 성격을 띤 광복절 출생의 광복둥이(그렇다고 45년생은 아니지만)다.
어려서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그걸 참아야 하는 직업군에 있을 땐 너무 힘들었다.


이젠 두 집안의 스타일과 성향, 정치적 지지, 학연과 지연 등의 기반을 수 차례의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만난 친지들의 입을 통해 결론지었다.
어릴 땐 그 가문이라는 허울이 대수냐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나와 내 딸들이 이루어 갈 가문을 생각해 보면(남성 중심의 유교적 사회라 딸이 무슨 가문을 이루냐고 한다면 조용하라고 말하겠다) 지금부터 숙연해진다.
나도 사실 세상적 기준에선 가문을 이루기 위해 한 일은 없다.
그저 남들처럼 부대끼며 살고 환경에 영향받고 일희일비하고...
그런데 알게 모르게 이 가문의 영향이 내 삶과 품위를 지키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면 어떨까.


내 직업군도 사람들의 이목과 시선이 집중되어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이라는 잣대 위에 늘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성격과 다르게 호탕하거나 쿨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타임머신을 타고 독립운동 시기나 6.25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 성향상 오히려 임진왜란 때나 독립운동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불의에 항거하여 소극적 불매운동 밖에 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나약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나의 조국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꼭 무언가를 하는 나와 내 딸들이 되면 좋겠다.
그게 가문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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