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가치관의 전복.

이퀄라이져 2020. 6. 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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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의 랜드마크, 빨간등대

 

난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저씨 인증인가.

아주 어릴 때부터 사극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간이 흐를 때마다 가치관의 혼란이 온다.

 

충신이 역적이 되고, 하루 아침에 실이 허가 되고 허가 실이 된다.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되기도 한다.

단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요즘 나의 화두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보자' 이다.

살아오면서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혹은 가족을 위해 내 꿈과 하고자 했던 일들을 포기했었다.

 

그러다보니 내 인맥을 포기해야 했고 돈도 모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세상적 기준에선 처절한 실패자였을 뿐.

자부심이 흑역사로 둔갑하고, 자랑거리가 상처가 되어 버렸다.

 

내가 무언가를 실수하거나 잘못 처신한 것이 아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윤리 도덕적 기준에서 FM 을 고집했다는 것.

옳고 그름의 잣대와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필수 불가결이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옳은 일을 하기보다 타협하고 인간관계를 택했어야 했나 싶고. 

사실 정작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안타까워하고 챙기다보니 '나'란 존재는 소멸되어갔다. 

소진되어지고 흐트러져 가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땐, 이미 내가 쇠하여져 간다는 걸 직시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온 것인가 말이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발자국의 모양이 선명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난 성인이 되자마자 이 나라를 뜰 것 같다. 

 

그런데, 사실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과거로 가는 문제는 고민할 것 같다. 

난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돌아보면 후회되고 이불킥 할 만한 흑역사들이 한가득이지만.

 

다시 돌아갈까? 

그러면 더 좋은 미래가 있는 걸까?

그래도 최소한 내가 상처 받고 흑역사를 만드는 일은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만한 일들이 몇 가지 있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겐 그렇지 못하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일들도 많았다. 

에이. 뭘 돌아가. 

 

누군가 그랬다. 

'슬럼프가 왔다는 것은, 그간 최선을 다해왔다는 반증' 이라고. 

난 지금 슬럼프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흑역사라 생각하니 씁쓸하다. 

 

나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 성공했던 지인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고, 

난 문득 시간의 흐름이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뒤를 돌아보고 있으니 말이다. 

타인도 따라해서 성공했으니 맞는 길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사람을 잘못 만나 그랬던 것처럼 그러는가. 

왜 어느 누구에게도 적개심을 가지고 그 관계를 해치며 집단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가. 

어느 그룹에나 그런 이들은 존재하지만, 사극처럼 그런 이들이 시간이 흐르고 1등 공신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유유상종이라던가. 

그런 이들은 용케도 서로를 잘 알아보고 합을 맞춰 보기 일쑤다. 

그리고 그들을 어렵게 컨트롤 했던 나로선,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돌아보게 된다. 그간 어떻게 한 걸까 진짜. 

 

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그냥 이대로가 좋다. 

후반전의 시작이지만 후유증이 너무 커서 숨을 고를 시간이 길어질 뿐. 

 

그래, 그동안 포기해왔던 나 자신의 꿈과 미래, 그리고 주변 인맥들을 회복하고. 

이미 늦은 일들에 대해서는 잊을 것은 잊고, 더 좋은 것들로 사람들로 가득 채워보는 거다. 

그래야 나 자신의 가치가 사소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그간 어두운 터널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

 

아무렴 어떠냐. 

단 몇 명이라도 나의 노고와 수고에 대해 인사로 응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지, 믿음이 불신이 되고 기대가 실망이 되어 버린 지난 수 년 간의 허송세월이 아쉬울 뿐. 

 

불명예 퇴진이 아님에도 그런 것처럼, 

박수 받고 인정받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반전의 역사는, 가치관의 전복의 역사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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