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너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
고 말한다면, 난 "출전 준비중인 교체명단 속 축구 선수" 라고 말하겠다.
전반전은 이미 끝났는데, 후반전 출전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반전은 날 위한 삶이 없었다.
가짜가 들어와 갈라놓고 어려움 겪는 바람에, 누군가의 아들이자 선생으로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 했던 임시 방편의 선택이 공적으론 최선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
그러니 난 전반전엔 이 무대에 출전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다, 인간관계도 모아놓은 돈도, 명예도 칭찬이나 박수도 인정도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난 시간들에 대해 수고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에게도.
그저 성경의 엘리야처럼 유리하며 방황하고, 쫓기고 이긴 것처럼 보이다가도 굶주리고 위협받고.
순종하고도 엘리사처럼 모욕 당하고 그랬다.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난 20년, 30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하고 내 인간관계를 바꾸기 위해 아예 다른 친분관계를 다른 사람들과 만들텐데.
나면서부터의 내 위치 때문에 인복도 없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같은 상황에 엄마도 너무나도 무서운 희귀병에 걸리고
난 정신적 방황과 우울증, 공황장애에 가까운 공포를 경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후반전 시작이 지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어떻게든 삶의 수레바퀴는 굴러가 이 와중에도 인생의 고달픔을 느끼며 후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난 언제쯤 출전할 수 있을지 감독의 부름을 기대하며 몸을 풀지만 출전 장담은 못 한다.
'후반에 출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 라는 하프타임이 길어지고, 난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오히려 나은 면도 있었다.
나의 부족함과 실력 없음이 감춰졌으니까.
하지만 난 감독의 신뢰를 알고 있고 믿고 있다.
언젠간 불러 주리란 걸.
내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도 날 믿어주듯, 난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Therefore, here I am.
Here I stand, and I have the singular moral insight.
후반이 시작되고 내 출전이 결정되면 잘 뛸 자신이 있다.
오래 준비해왔고 이 순간만 기다리며 살아왔으니까.
평생 머릿속으로 그리던 장면들, 숱하게 연습했던 기술들을 잘 쓸 자신이 있다.
장기인 하프 발리킥도, 큰 빛을 발할 것이다.
나이가 들며 100미터 주파 속도는 많이 줄었지만 스프린트도 아직 자신있다.
드리블도 준수하게 1,2명 정도는 제낄 수 있고 킬패스와 공간 선점도 자신있다.
수비수 출신의 공격수니 예측수비와 수비 가담도 잘 한다(feat.무리뇨 감독)
그러고보면 전반에 출전 못해 잃은 게 많지만 동시에 인생 공부하며 하나 하나 알아가는 와중에 노련해졌다.
무턱대고 사람 믿는, 학창시절부터 지인들에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던 역사가 몇 차례 반복되고.
내 사람이 걸러지고 단단해져 가는 단계다.
그렇게 걸러지고 결속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지만 뭔가 서글프기도 하다.
'곧 뛰게 되겠지?'
진작에 유니폼 갈아입고, 감독 눈치보며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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